2013년3월

공지

과학칼럼

올해는 혜성의 해
과천과학관에서 전통과학 분야 가운데 우리나라 '전통 선박'과 관련된 수업을 할 때 마다 학생들에게 던지는 첫 질문, "임진왜란 당시 우리 수군이 일본 수군과 맞서 백전백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열 명 중 아홉 명이 자신 있게 대답한다.
"거북선요!"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은 겨우 3척이었음을 감안할 때 수백 척의 일본 군함을 나홀로 상대한 거북선은 필시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전선(戰船)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거북선은 정말로 그렇게 위대한 전선(戰船)이었을까?

거북선은 일본 수군의 주요 전투 형태인 등선육박전술(登船:肉薄戰術: 적의 배에 뛰어들어 무기를 들고 싸움)에 대비하여 개발된 돌격 군함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거북선의 등에는 거북 무늬가 그려져 있고 그 위에는 날카로운 못과 같은 것들이 꽂혀져 있어 적의 접근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배의 좌우에서 화포를 쏘아대는 것은 물론 용머리를 한 배의 앞 부분에서는 연기까지 뿜어대고, 특히 난생 처음 보는 배가 적선 가운데로 수시로 치고 들어가 좌충우돌 적진을 교란하니 일본 수군들에게 있어 거북선은 분명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북선이 임진왜란 해전 승리의 절대적인 이유는 아니다. 실제로 임진왜란에서 왜군을 물리치는데 가장 크게 공헌한 배는 거북선보다는 판옥선(板屋船)이다. 판옥선이란 갑판이 한 층인 평선 위에 판옥 즉, 상갑판을 추가로 얹은 배를 말한다. 거북선은 기존의 판옥선에 백병전을 펼치는 왜군들이 배 위에 올라오지 못하도록 다시 거북 등 모양의 뚜껑을 이중으로 덮은 것이다.
쉽게 말해 거북선은 판옥선을 왜군들과의 근접전에 불리하지 않도록 개량한 것이다. 문헌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해전의 대부분은 판옥선이 수행했고 거북선은 돌격선으로 적진을 종횡으로 출입하여 적의 전열을 무너뜨리는 것이 주 임무였다.

올해는 혜성의 해
16세기에 이르러 왜선(해적)들은 우리나라 연해를 자주 넘나들면서 각종 노략질을 일삼았는데,이런 상황에서도 조선 수군은 속수무책이었다. 그것은 크기가 커지고 선상(船上)에 방패를 설치하는 등 왜선의 구조가 개선되어 우리의 총통으로 격파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조선으로서는 개량된 왜선을 대적할 수 있는 새로운 함선의 개발이 요구되었고, 이리하여 출현하게 된 것이 바로 판옥선이다.

판옥선은 우선 다층 전함이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전 시기의 전함들이 모두 단층의 평선(平船)이었기 때문에 갑판 위에는 전투요원과 비전투요원인 노꾼이 함께 있어 전투의 효율성이 매우 떨어졌다. 이에 비해 판옥선은 선체가 이층으로 되어 있어 노꾼은 판옥 안에서 노만 젓고, 전투요원은 2층의 높은 갑판 위에서 적을 내려다보며 공격을 할 수 있다. 또한 판옥선의 넓은 갑판은 대포를 설치하기에도 좋으며 사정거리도 늘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배가 2층 구조라서 왜선보다 상대적으로 높아 백병전에 능한 왜군들이 배 위로 쉽게 올라갈 수 없었고, 더욱이 넓은 갑판 위에 왜군보다 절대 우위에 있는 화약무기(화포)들을 다량으로 배치할 수 있었다. 또한 판옥선은 배의 밑바닥이 평평한 평저선(平底船)으로서 바닥이 뾰족한 첨저선(尖底船)인 왜선에 비해 속도는 느리지만 방향 전환이 쉽다는 장점을 적극 활용해 마치 현대의 함대처럼 포격전으로 적을 무찌를 수 있었다. 이처럼 판옥선은 조선 수군의 단점(근접전에 불리)을 극복하고 장점(원거리 공격에 유리)을 살려 왜군의 전술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아군을 유리한 위치에서 싸울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임진왜란 때 왜군을 격파한 거북선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판옥선'이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왠지 낯설다. 뛰어난 화력과 기동력을 갖춘 거북선은 필시 위대한 전선(戰船)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보다는 임진왜란 해전 승리를 대표하는 상징물로써 '판옥선'도 거북선과 함께 모든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를 바란다.

글 : 국립과천과학관  손성근 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