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6월

공지

과학칼럼

생명의 근원, 그리고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의 근본은 무엇일까?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은 세상의 근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다. 그리고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한 이들은 물(탈레스)이나 공기(아낙시메네스) 또는 수(數-피타고라스)가 세상의 근본이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그리스어로 아르케(arche)라 불리는 세상의 근본에 대한 궁금증은 고대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오늘날 우리가 과학이라 부르는 학문을 싹틔우는 기반이 되었다.

고대 자연철학자들이 내세운 것을 비롯해 지금껏 세상의 근본으로 지목된 것들은 다양하지만, 오늘날 과학의 기준에서 수용된 것은 '원자(原子)'다. 널리 알려진 대로 원자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 등으로 이루어진 물질의 기본단위다. 한때는 원자(原子)를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단위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오늘날의 과학은 이를 더 작은 여러 입자로 쪼개질 수 있음을 밝혀냈다.
'원자'는 흔히 듣는 단어 중 하나지만 사람이 감각을 통해 실제 느끼기는 어렵다. 이보다는 원자들이 결합하여 고유한 성질을 보이는 분자가 오히려 쉽게 와 닿는다. 예를 들어 물을 구성하는 원자인 수소와 산소는 추상적이지만, 이들이 이뤄낸 분자인 물은 눈이라는 감각기관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우주가 탄생한 이후 널려있던 여러 작은 미립자들이 만나 원자를 이루고 분자로 커지면서 세상은 점점 더 감각적이고 아름답게 변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우주에서 가장 감탄스러운 존재인 생명을 설명하는 데 원자와 분자만으로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흔히들 생명의 근본을 DNA 또는 단백질이라고 말한다. DNA는 생명체의 정보를 담고 있다. 단백질은 DNA 정보로 몸을 구성해 여러 생리적 작용을 나타내고, 인식과 마음의 활동에도 관여한다. 생명의 근본으로 보는 DNA와 단백질 이 두 가지는 '고분자'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주류 학설은 초기의 우주와 지구에 떠돌던 분자들이 서로 결합하여 고분자를 형성한 것을 생명의 시초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고분자(高分子)라 함은 분자들이 뭉쳐있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단백질은 여러 아미노산 분자들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거대한 물질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거대하다는 원자단위의 미시세계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우리 눈으로 볼만큼 크지는 않다.

주목할 점은 분자들의 변화이다. 분자들이 고분자를 형성하게 되면 입체적인 구조를 띄며 분자가 가지고 있던 물질의 고유한 성질을 넘어서는 특이한 성질을 가지게 된다. 가령 DNA의 입체구조는 두개의 사슬이 상호 결합된 나선형으로 정보 저장과 복사에 좋은 최적의 구조를 나타낸다. [사진1] 여러 아미노산이 결합한 단백질 역시 특유의 3차원 구조를 보이며 생명체 내에서 물리적 화학적 반응에 직접 관여하거나 촉매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고분자가 생명 뿐 아니라 현대 문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일례로 우리가 항상 입고 있는 옷부터 흔해 빠진 프라스틱 병까지 고분자의 입체적 구조가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천연섬유인 면, 실크를 비롯하여 나일론과 같은 인조섬유까지 모든 섬유는 긴 사슬모양의 선형 고분자를 기본 단위로 구성된다. 선형으로 긴 입체적 구조를 가진 고분자는 실을 만들 수 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실로는 천을 짤 수 있다. 또 입체적 구조에 변형을 가하면 스판덱스와 같은 길게 늘어나는 섬유도 제작할 수 있다. 플라스틱 역시 석유화학을 통해 얻어진 여러 분자들을 결합하여 거대 분자 형태로 만든 덩어리인 것이다. 이 또한 어느 분자로 어떠한 입체구조로 만드는가에 따라 다양한 성질의 플라스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현재 기술은 고분자 물질의 입체구조를 정밀하게 설계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원하는 입체구조로 고분자를 설계하고 활용하는 기술은 편리한 삶으로 바로 이어진다.
DDS(Drug Delivery System)-고분자를 이용해 약물을 신체 내 정확한 위치에 전달하거나 무거운 배터리를 대체하는 가벼운 배터리, 둘둘 말아 다닐 수 있는 휘어지는 스크린 등이 생활의 변혁을 이끄는 대표적인 정밀 고분자 화학의 산물들의 예일 것이다. [사진2]

오늘날 과학에 의하면 고분자는 생명을 탄생시킨 물질이다. 동시에 고분자로 인해 생명으로 탄생한 인간이 현재의 찬란한 문명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물질이기도 하다. 현대 과학은 지금껏 비밀스레 감추어진 고분자에 대해 여러 가지 사실을 밝혀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분자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여전히 많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고분자에 대해 알게 될수록 생명의 비밀에 가까워지고, 더불어 인류의 문명도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점이다.

DNA 구조
[그림1] DNA 구조 - 출처: Wikipedia.org
휘어지는 스크린
[사진2] 휘어지는 스크린 - 출처 : Wikipedia.org

글 : 국립과천과학관  임두원 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