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국립과천과학관 미래상상SF축제의 지난 행사 모습입니다.
2017 SF 어워드 수상작 발표 및 심사평-장편소설 부문
등록일 2018.01.19
조회수 883
■ 2017 SF 어워드 수상작
구분 | 대상 | 우수상 | 우수상 |
장편 소설 | 시간 망명자 (김주영) |
폴픽 Polar Fix Project (김병호) |
초인은 지금 (김이환) |
중단편 소설 | 우주의 모든 유원지 (김창규) |
하늘에 묻히다 (류호성) |
어머니들의 아이 (바벨) |
만화 | 오디세이 (갈로아) |
냄새를 보는 소녀 (만취) |
네가 있던 미래에선 (이시영) |
영상 | Green Light (김성민) |
다희 다이 (김영덕) |
부산행 (연상호) |
■ 2017 SF어워드 장편소설 부문 심사평
이번 SF어워드 장편부문은 2016년 5월부터 2017년 5월 사이에 국내 작가가 출간한 SF 장편소설을 심사대상으로 삼았고, <폴픽 Polar Fix Project>, <시간망명자>, <초인은 지금>을 최종 심사대상으로 선정했다.
<폴픽 Polar Fix Project>은 후보작 중 과학적인 설정에 가장 정성을 쏟았고, 지구멸망에 논리와 서사를 부여한 작품이라는 점이 장점이었다. “SF”가 과학을 바탕으로 한 ‘소설’임을 감안하여 깊이 조사한 자료들을 상세히 설명하고 싶은 욕구를 좀 더 억제하고, 독자가 원할 만한 내용이 무엇인지 고민했다면 더 완성도 높은 소설이 되었으리라는 점이 아쉽다. 하지만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수작이라는 점은 분명했기에,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우수상으로 선정했다.
<시간망명자>는 가독성과 추진력이 강한 서사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인물 설정의 평면성과 정형성, 몇 가지 어색해 보이는 상황 설정이 아쉬웠으나, 설명이 과잉되기 쉬운 설정인데도 불구하고 서사로 단점을 만회하고 약진적인 이야기를 완성한 점이 심사위원들에게 두루 높은 평가를 받았다. <초인은 지금>은 선명한 인물 묘사와 생생한 생활감이 인상적이었다. 반대로 장편소설로서는 서사가 단순한 점이 아쉬웠다. 그래도 완성도 높은 매력적인 작품임에는 분명했다. 두 소설 모두 장단점이 뚜렷했다. 심사위원들은 두 작품 사이에서 깊이 고민한 끝에 소설로서의 장점이 돋보이는 시간망명자를 대상작으로 선정했다.
심사 과정에서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거의 모든 작품들이 디스토피아물이었고, 인공지능을 다루고 있었다. 둘째, SF라고 하면 우선적으로 계급 구조가 정착된 사회를 기본 설정으로 삼으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셋째, 우려될 만큼 젠더 의식이 결여된 작품이 많았다. 넷째, 많은 작품들이 분노를 과잉 표출하고 있었다.
SF가 반드시 미래를 다루는 장르가 아니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으며, 미래가 반드시 디스토피아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작품들이 거의 기계적으로 사이버펑크적인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우울한 현 사회상의 반영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지나치게 자주 쓰였기에 좀 안이한 설정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또 많은 작품이 인공지능을 소재로 했는데, 새로운 시각에서 참신하게 다룬 내용은 극히 적었다. 유행하는 소재일수록 소설 속에서 어떻게 다룰지 더욱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계급 구조는 SF, 순문학, 판타지에 상관없이 쓸 수 있는 설정이므로, SF 하면 일단 계급 구조를 상정하는 태도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여러 심사 작품들이 여성이나 젠더를 대하는 태도, 혹은 태도의 결여는 대단히 우려스러운 수준이었다. SF어워드가 출판된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 심사 작품에 청소년 소설들도 포함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디스토피아에 반드시 섹서로이드가 필요할까? 장편소설에서 사건과 사건 사이에 서사의 공백이 생겼을 때, 이를 굳이 성적인 표현, 비유, 정상성의 확인으로 메워야 할까? 놀랄 만큼 많은 작품들이 소재, 주제, 전개상 전혀 필요 없을 때에도 여성을 대상화하고 남성의 남성성을 확인하는 데 지면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심사 작품들에서 전반적으로 분노라는 감정이 과잉 상태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SF가 경이감이라는 미학적 정서를 핵심으로 하는 장르라는 점을 굳이 거듭 말하지 않더라도, 소설가가 소설을 통하여 독자에게 분출하는 가장 강렬한 감정이 분노라면, 그 소설은 매력적인 이야기로 살아남기 힘들다. 타인의 분노와 욕설, 자위를 보려고 소설을 읽는 독자가 몇이나 될지 진지하게 고민하여 주기를 바란다.
이번 장편부문 심사는 위 네 가지 이유에서 심사위원들에게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수상작들이 소거법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고, 그중 단연 돋보인 작품들이었다는 점은 분명히 밝히고 싶다. 한편, 이번 수상작들 중에는 라이트노벨, 웹소설을 기반으로 한 출간소설 등은 보이지 않으나 이런 장르들을 심사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심사기준에 따라 좀 더 과학적인 작품, “한국”SF에 대해 고민한 작품들을 우선시했고, 완결되지 않은 작품은 수상작에서 제외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출품작 <다윈 영의 악의 기원>에 대해 몇 마디 덧붙이겠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SF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원죄의 유전과 진실의 가치 등 깊은 주제의식을 뛰어난 솜씨로 다룬 수작이었다. 안타깝게도 작가의 가능성이 앞으로 더 크게 꽃피어나는 모습을 볼 수는 없겠지만, 이 작품이 여러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오래 읽히기를 기원한다.
심사위원 송경아, 이한음, 정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