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국립과천과학관 미래상상SF축제의 지난 행사 모습입니다.
2017 SF 어워드 수상작 발표 및 심사평-중단편소설 부문
등록일 2018.01.19
조회수 725
■ 2017 SF 어워드 수상작
구분 | 대상 | 우수상 | 우수상 |
장편 소설 | 시간 망명자 (김주영) |
폴픽 Polar Fix Project (김병호) |
초인은 지금 (김이환) |
중단편 소설 | 우주의 모든 유원지 (김창규) |
하늘에 묻히다 (류호성) |
어머니들의 아이 (바벨) |
만화 | 오디세이 (갈로아) |
냄새를 보는 소녀 (만취) |
네가 있던 미래에선 (이시영) |
영상 | Green Light (김성민) |
다희 다이 (김영덕) |
부산행 (연상호) |
■ 2017 SF어워드 중단편소설 부문 심사평
수많은 출품작 중에서 대상 한 편과 우수상 두 편, 이렇게 세 편만을 선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은 작품들이 많아 우수상을 최소한 네 편으로 늘릴 수는 없을지 타진해 보았다는 사실을 꼭 말씀드리고 싶다. 전반적으로 매우 풍성하고 즐거운 과정이었다. 다양한 발상과 새로운 시도들도 발견할 수 있었고, 한국 SF만의 특징적인 면모의 형성과정 역시 가늠해 볼 수 있는 과정이었다. 심사의 기준이 된 것은 SF적 발상과 함께 중단편이라는 특성을 얼마나 잘 활용하여 이야기를 끌어가면서 동시에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전달 했는가 였다. 특히 단편은 장편에 어울리는 설정에서 단순히 이야기를 정리하거나 압축하는 방식을 취해서는 완결성을 가지기 힘들다. 단편은 단순히 글의 분량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그에 맞는 형식과 주제의 전달 방식이 명확하게 구현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게 독자들에게 전달되기 어렵다. 더욱이 단편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밀도는 구조적인 지점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쉬이 흩어져 버리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제 아무리 기발한 상상력이나, 경이로운 세계라 할 지라도 결국 독자들에게 닿지 못하게 된다.
본심에 올랐으나 아쉽게 수상작에는 오르지 못한 작품 중 정승락 작가의 <풀잎 위의 개미>와 차태훈 작가의 <어느 시대의 초상>이 심사위원들에게 대단히 큰 인상을 남겼다. <풀잎 위의 개미>는 흡인력이 뛰어나며 시종일관 서글프고 답답한 분위기의 묘사가 굉장히 훌륭하다. [어느 시대의 초상]은 타임리프라는 소재를 SF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아주 잘 이해하고 집필한 작품이었다. 그 외에도 정세랑 작가의 <11분의 1>이나 장강명 작가의 <아스타틴>, 해망재 작가의 <바이센테니얼 비블리오필>, 곽재식 작가의 <박흥보 특급>과 같은 작품들도 개성적인 이야기로 심사위원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 외에도 출품해주신 모든 작가님들께 좋은 작품을 읽을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훌륭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대상: 김창규 <우주의 모든 유원지>
시간과 역사에 관한 묵직한 주제와 액션소설의 경쾌한 진행이 잘 결합된 수작이다. 김창규 작가의 작품들은 대상 수상작인 <우주의 모든 유원지>와 다른 추천작 <순수한 배드민턴 클럽>, <모자를 벗지 않는 사람들>까지 문장 하나하나가 이어질 때마다 독자를 놀라게 하는 참신함이 있다. 동시에 단 한 문장도 허투루 쓰지 않고 전달하려는 의미와 가치를 빈틈없이 전달하며 매끄럽게 이야기를 끌어 나간다. 중단편이라는 장르의 분량 안에서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하고 세계관과 설정을 어떻게 독자에게 알리며 결말을 어떻게 마무리하면 좋은지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중단편 SF를 쓰는 이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작품이다. 암흑물질 소용돌이의 강도가 주기적으로 변하는 성질을 이용하여 인공중력장을 만들어 놀이기구로 즐기는 “우주의 모든 유원지”는 그 발상부터 독특하지만 이곳은 사실 단지 공간적 배경일 뿐이다. 이 “우주의 모든 유원지”에서 인형에 공기총을 쏘는 사격장을 운영하는 주인공은 죽지 않는 몸을 가진 “불멸자”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지만 어느 날 청부업자들이 . 그를 찾아온다. 우주에 존재 할 수 있는 입자, 즉 정보의 수는 물리학의 법칙상 유한한데, 불멸자들은 무한한 정보를 사용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정보량은 평등해야 한다”를 주장하는 새 정권에서 그를 처리하기 위해 업자를 보낸 것이다. 언뜻 들으면 새 정부는 우주 전체의 생존을 위한 모든 존재의 평등권을 외치는 것 같지만, 이 새 정권은 기실 축적된 과거 지구의 정보, 즉 역사를 삭제하고 자기들 입맛대로 왜곡하려 하는 파시스트들일 뿐이다. 주인공을 포함한 불멸자들은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이 ‘팽창주의자’ 정권과 맞서 싸운다.
좋은 작품들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우주의 모든 유원지> 또한 과학에 대한 이해와 참신한 발상과 함께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작가의 깊은 시선이 함께 녹아 있다. 작품 선정 기준을 들어 평하자면 우선 SF적 발상 측면에서는 행성의 중력구조를 이용하는 놀이기구, 죽음을 넘어서는 “육체 갱신”, 시간여행까지 거의 모든 문장마다 새롭고도 적절한 소재들이 소개된다. 작품성과 대중성 측면에서 위에 언급한 대로 단편 소설의 분량을 충실하게 이용하여 독자의 모든 예상을 뛰어넘으며 새로운 세계로 독자를 인도하는 필력으로 전체주의를 경고하는 주제의식을 배합한 뛰어난 작품이다.형식과 주제면에서 완결성과 함께 가능성까지 내포한 수작이라는 것에 대해 심사위원 세 명의 의견이 일치하여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바벨 <어머니들의 아이>
가상의 외계 행성인 “무사이”에서 단성생식으로 태어난 실험적인 소수의 세대가 같은 기술을 개발한 지구인들을 만나 차별과 편견을 이기고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는 진취적인 이야기이다. 주인공 모투나는 “무사이”별에서 인공적인 방법인 단성생식으로 태어난 “어머니들의 아이”이면서 동시에 손가락이 일부 짧고 가느다란 유전적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 인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인공이 “의원”이 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태어난 “아버지의 아이”들의 압박에 맞서 마침내 지구에서 찾아온 인공지능 우주선 “푸네스”의 도움을 받아 그 안에 타고 있던, 똑같이 단성생식으로 아이를 가진 지구의 임산부들을 구조한다. 단성생식으로 태어난 주인공과 외계행성에 찾아온 지구 우주선과의 만남 등 SF적 발상과, 주인공 모투나는 물론 지구에서 찾아온 인공지능의 캐릭터까지 등장인물 묘사가 전반적으로 뛰어나다. 문장력이나 맞춤법, 전개가 완전히 매끄러운 편은 아니나 독자를 이끌어가는 힘이 있으며 대중성 면에서도 호소력과 재미가 있다. SF적인 설정 면에서는 인공지능 우주선이라 하더라도 우주공간에서 대기가 있는 행성을 향해 사탕을 던졌을 때 사탕이 성층권에서 불타버리지 않고 어떻게 지상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
전반적으로 젠더기득권을 비판하는 작가의 인식과 차별에 저항하는 주인공이 마음을 울린다라는 평이 있었다. 또한 평등의 문제를 편가르기나 권력다툼의 문제가 아니라 후대를 지켜나가기 위한 생존의 문제로 해석하는 관점, 인간(외계인을 포함해서)은 당연히 평등해야 하며 후대는 당연히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주제의식이 훌륭하다. 젠더의 문제를 지향하는 것이 작품성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문제의식들을 작위적이거나 도식적으로 전개한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에게 자연스럽게 내재된 상태에서 이야기에 녹아 들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이러한 부분들이 심사위원들에게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 , . 이는 역사적으로 사회적 담론들에 대해 전위적인 메시지를 던져왔던 SF의 특성과도 합치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류호성 <하늘에 묻히다>
스팀펑크 느와르는 한국 SF에서 매우 보기 드문 형식인데 작가는 이를 대단히 자연스럽게 활용한다. 작품의 배경은 바다가 아니라 하늘을 헤엄치는 가상의 동물 “하늘고래”를 포획하여 그 피를 정제한 “익시르”라는 물질을 증기기관의 연료로 사용하는 사회이다. 화자인 탐정 “이슈마엘”은 이 하늘고래를 잡는 포경선 선원으로 일하다가 실종된 “숀”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수사에 나선다. 소재와 줄거리가 모두 창의적이며 특히 <모비 딕>에 대한 풍성한 오마주가 대단히 매력적이고 신선하다는 평이 있었다. 작가의 필력과 감각이 매우 뛰어나며 <하늘에 묻히다>라는 제목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서정적인 결말이 마음에 남는다. 마치 작가가 실제로 작품 속 가상의 포경선을 경험한 듯한 생생한 묘사가 인상적이며 작품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주인공이 실종된 “숀”을 찾아가는 도중에 만나는 인물들의 묘사도 흥미롭다. 전체적으로 중편소설의 분량 안에서 늘어지는 부분도 건너뛰는 부분도 없이 알맞게 완결되는 구성이 매우 우수하며, 앞으로 계속 어떤 작품들을 선보일지 대단히 기대되는 작가이다.
전통적인 느와르의 요소를 충실히 살렸기 때문이겠지만 여성 기자인 이브와 실종자의 아내이며 이슈마엘에게 수사를 의뢰하는 마리아 외에 이렇다 할 여성 등장인물이 없는 점, 마리아조차 전형적인 아내이자 어머니의 모습뿐인 평면적인 캐릭터인 것이 아쉽다는 평과 느와르의 전형적인 팜므파탈로 묘사되는 이브의 캐릭터가 인상적이라는 평이 엇갈렸다. 이는 모든 창작자들과 독자들이 함께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다. 장르의 관습성에 충실한다는 것이 시대적 변화나 담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시대적으로 변화되고 있는 의미나 담론의 반영히 충실했다고 작품의 완결성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관습성을 도식적으로 활용하기 쉬운 장르에서는 관습화된 설정들이 현재의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수용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심사위원 이지용, 복도훈, 정보라